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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解氷) 2023

2023.3.17(금) - 4.6(목)

아트레온 갤러리 선정작가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로 129, B2 

11:00-18:00 open 일요일 휴관 T: 02.364.8900

 

해빙 解氷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相見禮)를 이룬다.”  

김광섭, <봄>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연결되어 있다. 끝없이 이어진다. 살면서 절실하게 체감하는 문구다. 땅에서 수확된 생명의 먹거리도 음양오행에 따라 생장하고 우리는 그것을 섭생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연과 몸의 순환을 느낀다.

나는 쌀, 콩, 감자 등 곡식을 포함하여 토마토, 양파, 브로콜리 등 음식을 소재로 생명성을 탐구한다. 나에게 이 식재료들은 가사 노동의 지겹고 익숙한 존재에서 빠져나오는 출구이자 작업의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한 개의 달걀에서 노른자의 양기와 흰자의 음기를, 통곡물인 한 톨의 현미에서 음양의 완전한 균형을 발견한다. 여름 잎 채소는 향이 진하며 성질이 찬 음기(陰氣)를, 겨울의 뿌리 채소는 단단한 성질로 양기(陽氣)를 머금고 있다. 더운 여름엔 몸을 식히기 위해 채소를 날 것으로, 추운 겨울엔 따뜻하게 푹 익혀 먹는다. 절기에 따른 식재료와 섭취 방법의 조화에 감탄한다.

천체의 음양오행을 대지가 품은 먹거리에서 발견하고 진정한 양생(養生)과 인간 관계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부엌에서 발견한 곡식과 야채는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 덩어리고, 식물인 동시에 동물처럼 보이는 이중성을 내포하는 존재다. 이들을 식물 초상화처럼 때로는 풍경화처럼 표현하였다.

긴 암흑과 음의 극점인 동지(冬至)가 지나면 양의 기운이 시작되어 생명이 다시 태동한다. 돌고 도는 시간의 흐름으로 봄이 온다. 침잠, 인내의 겨울에서 만물이 생동하며 본격적으로 제모습을 드러낸다. 녹은 물은 메마른 곳을 적시고 죽은 듯한 나무가 소생한다. 경이로운 ‘해빙’이 시작된다. 차가운 계절을 견딘 채소들은 쓴 맛이 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로 달고 향긋하다. 극과 극처럼 여겨지는 죽음은 실은 삶과 짝이고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 여성과 남성, 달과 태양 등 상반된 두 힘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얼었던 자연은 점진적으로 녹는다. 각각 순서가 있는 만물의 질서를 본다. 흙이 헐거워져야 싹이 튼다. 고대인들은 자연과 인간 등 삼라만상이 이어진 공동체에서 자연의 소리를 섬세하게 들었다. 그들은 달의 변화를 보고 농사를 지었고 적정한 때를 기다렸다.

동토(凍土)가 녹으며 온기가 퍼지는 이 봄, 죽음과 삶의 아름다운 ‘상견례’를 통해 생명, 활기, 자유를 소망한다.

 

2023.3. 최 혜 인

 

 

 

Thaw

Everything changes, is connected to one another, and continuously goes on. This is a profound realization that comes with living life. Plants grown from the earth remind us that humans and nature are organically linked, and we obtain nutrients by eating them.

I explore the energy of life through various ingredients, not only grains like rice, beans, and potatoes, but also tomatoes, onions, and broccoli. These ingredients become an escape from the mundane and tedious chores of a homemaker and a gateway to a new creative world.

The yolk and egg white of an egg display the energies of yin and yang, and a single grain of brown rice shows the perfect balance between the two. Summer and winter vegetables possess their respective yin and yang energies, and we eat them in various ways accordingly. I admire the harmony between seasonal ingredients and consumption methods.

I deeply think about nurturing and human relationships while contemplating the yin and yang energies found in celestial bodies and the earth. The grains and vegetables found in the kitchen may appear delicate, but they possess a strong life force and embody the duality of being both plant and animal-like. I express them through botanical portraits and landscape paintings.

When the winter solstice passes, and the yang energy begins, spring approaches, and life starts to move again. Melted water wets the dry land, and seemingly dead trees come back to life. Such miraculous transformations occur. Vegetables that have withstood the winter are sweet and fragrant. The opposing forces of death and life, small and large, female and male, the moon and the sun, all drive life.

As the frozen nature gradually melts, everything proceeds in order. The soil must loosen for new sprouts to grow. Ancient people carefully listened to the voice of nature in a community where everything was connected and lived according to it. They observed the changes of the moon, farmed accordingly, and waited for the right time.

This spring, as the frozen soil melts and warmth spreads, we look forward to life, vitality, and freedom through the beautiful encounter of death and life. In the cycle of nature, we experience life and death, change and order, connection and harmony. All these intertwined aspects help us understand and navigate the world. So when spring comes, we feel a new beginning and hope, and we deeply understand the preciousness of life.

           

                                                                                                                                                            2023.3. HYE IN CHOI

 

「서울아트가이드」vol.256_2023.4. 이 달의 전시 리뷰 p.112

 

최혜인 ”해빙” 개인전

각종 곡식과 채소와 같은 식재료에서 음양의 자연 본성을 발견하는 최혜인의 작품은 정물화이기보다 한 편의 ‘식물 초상화’! 삼합 장지에 백토, 금분, 과슈, 아크릴, 목탄, 먹물이 혼성된 그녀의 회화는 백토의 텁텁한 질료와 수분을 먹은 안료가 서로 부딪히면서 질박한 흙의 냄새를 품어 안는다. 생사가 교차하는 끈끈하고도 애잔한 삶의 자리!

김성호(미술평론가)

e갤러리_이데일리_2023.3.16_오피니언25면

“최혜인_가시와 구멍”

잊을 만하면 나타나 냅다 뒤통수를 후려친다. ‘난 살아있다’고, ‘넌 깨어있느냐’고. 이렇게 돌아올 땐 지난번 그들이 아닌 듯하다. 더 야물고 더 단단해져 있으니까. 화면으로 낸 붓길이 그렇고, 그 길에 키운 곡식, 채소가 그렇다. 저토록 거칠고 역동적인 ‘오이 크러시’(‘가시와 구멍’ 2023)를 본 적이 있는가. 온 몸을 던져 격돌을 감행한 듯한, 어디를 향해서든, 무엇을 향해서든, 혹여 그냥 스스로 산화하는 과정을 미세하게 잡아냈을 뿐이라 해도 말이다. 생사를 가르는 비장미가 흐른다고 할까.

작가 최혜인은 ‘식물’을 탐구하고 그린다. 아니, 이 정도론 부족하다. 양생할 수 있는 식물을, 음양의 조화를 아는 식물을, 자연 순환에 올라탄 식물이다. 맞다. 식재료, 우아한 자태와는 거리가 먼, 주로 식탁에 오르는 그들이 대상이다. 출발은 마땅히 지독한 생명력에 대한 경의부터란다. 약해 빠진 한 개, 한 톨이 견고한 생장을 거쳐 다른 생명을 틔울 때까지, 치열하지 않으면 못 버틸 생의 본능을 옮겨낸다고 할까. 관찰과 묘사, 철학까지, 작가도 집요하긴 마찬가지다. 적나라한 해부도처럼 보였던 예전 질펀한 화면에 ‘속도감’이란 신무기를 장착했다. 대단히 ‘빨라졌다’. 그럴 거다. 죽자고 사는 현장이 나른하고 고요할 리만은 없지 않은가.

 

4월6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아트레온 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 ‘해빙’에서 볼 수 있다. 삼합 장지에 백토, 안료, 100x100cm, 아트레온 갤러리 제공.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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