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기행 The Inner Journey of the Plants 2006

조화로움을 찾아 떠나는 내면 여행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조화롭게 공존해야 합니다.’ 〈소박한 밥상〉에서 아름다운 자연주의자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은 조언한다. 먹을거리와 먹는 행위를 통해 저자가 제안하는 조화로운 삶은 구체적이다. ‘식사는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 할 수 없이 간단히 준비하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로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며 친구와 만나라.’ 저자의 조언대로라면 최혜인은 부엌과 식탁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그 시간을 작업에 써야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 부엌과 식탁 자체가 작업의 주제인 탓이다. 그럼에도 최근 최혜인의 작업은 〈소박한 밥상〉과 닮아 있다.


야채류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헬렌 니어링이 가장 간단하고 깨끗한 음식으로 독자에게 추천한 음식이다. 네모 잡이 종이를 점령한 보무도 당당한 야채들이다. 과거에 최혜인 작업의 소재 또한 감자와 같은 야채들이었다. 다만 변화라면 소재 표면에 머물던 관심이 내면으로 깊어졌다는 점이다. 양송이버섯과 브로콜리 등은 부분적으로 보면 생김, 길이, 크기, 색깔 모두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이름’, ‘하나의 존재’로 인식되는 야채들이다. 마치 다양한 관계가 공존하는 사람살이 같기도 하고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룬 가족 같기도 하다.

"손가락만한 버섯 밑에 작은 버섯들이 기생하는 모습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인간군을 생각했다. 브로콜리 표면의 틈들에서 때로는 원활하게 소통되지 못하는 관계의 어려움을 떠올렸다."

최근 최혜인의 작업 주제는 ‘관계’이다. 뿌리가 얽히고설킨 콩나물은 작가의〈지금, 현재〉이고, 머리 네 개가 하나로 묶인 버섯은 〈가족〉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마침내 넷이 하나의 가정을 이룬 작가의 삶과 작업을 분리해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가족의 숫자가 하나 둘 늘면서 역할과 의무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분주해진 동선 속에서 작가는 〈내 안에 남아있는 미성숙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따로 또 같이 있는 〈닮음과 닮지 않음 사이〉를 경험한다. 늘 가까이에 있는 야채류들을 통해서 이다. 따라서 화면에 등장하는 야채들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인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성찰의 매개물인 셈이다. 


관계에 대한 고민은 색을 통해 작업으로 연장된다. 최혜인은 얇은 순지나 장지를 주로 사용한다. 민감한 선의 표현을 고려한 선택이다. 그 위에 십 여 차례에 걸쳐 아교포수를 한다. 먹이나 염료가 올라가는 것은 아교포수를 마친 후이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작업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작업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색의 사용이다. 명도와 채도가 낮거나 무채색이 주를 이루던 화면이 한결 화사하다. 색이 뜨지 않게 소목과 같은 식물성 안료를 먼저 칠한 후 광물성 안료를 다시 칠하기도 하고 흐린 것을 여러 번 겹쳐 보기도 한다.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가를 살피기 위함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무엇일까’에 머물러 있던 작업은 ‘그림을 그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로 한 걸음 나아간다. 이번 전시에서 색은 관객과의 관계 맺음, 더 나아가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대안인 것이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꽃에서 우주를 본다.’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이렇게 ‘순수’를 꿈꾸었다. 최혜인도 그랬었다. 같은 꿈을 꾸었었다. 작업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꿈은 아니다. 방법이 다르다. 더 이상 혼자 꾸는 꿈이 아니다. 함께 꾸는 꿈이다. 양송이버섯과 브로콜리로 차린 최혜인의 소박한 밥상이 특별하기도 한 이유는 여기 있다. 


공주형 (학고재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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