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2014
Small planets
2014.4.23 - 5.3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7-1
02.738.2745
최혜인의 《소행성》, 존재론적 모험
최혜인은 오랫동안 식물에 예술적 관심을 집중해 왔다. 식탁과 주방에서 흔하게 마주쳤던 야채와 곡물은 현실 세계에서 그와 친숙한 관계를 맺어온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회화는 단일한 군집 내의 이질적 색깔과 모양 혹은 동일한 범주 안의 상이한 성질과 상태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목도한 이질감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해 왔다. 그의 회화에서 식물들은 언제나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서 끊임없이 심리적 거리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존재와 다르게』에서 레비나스(E. Levinas)가 언급한 가까움의 원초적 불충분함을 떠올리게 한다.
근작들에서 그는 식물을 매개로 인간 개체와 그 관계에 대한 유기적 사유를 지속한다. 여전히 그는 불충분한 가까움의 존재들의 다름과 차이에서 개성이 제각각인 인간 개체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 뿌리가 뒤엉킨 채 무리를 이루고 있는 콩나물에서 복잡다단한 이해들로 얽힌 인간관계를 떠올린다. 여기에 덧붙여 근작들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캔버스와 종이에 과슈와 아크릴, 안료와 백토를 사용해 한층 풍부해진 색감과 질감만이 아니다. 근작들에서 그는 관계와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족〉,〈사춘기〉,〈상추꽃〉등 기존 회화에서 그는 관계의 확정과 그것에서 비롯된 구체적 상황을 형상화해 왔다. 이에 비해 〈움트다〉,〈번식하다〉,〈정착하다〉,〈순환하다〉와 같은 근작들에서 보듯 그의 예술적 관심은 관계의 생성과 지속, 과정과 구조로 이행 중이다. 그는 발아하고, 열매 맺는 감자와 콩을 통해 충돌과 갈등, 화해와 이해의 반복 속에서 생성되고, 성장하고, 확장되는 인간관계를 본격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달이 차고 기울듯이, 낮이 길었다가 짧아지듯이, 산모가 생명을 잉태했다가 출산을 하듯이 그의 근작들에서 가시화되는 관계와 상황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관계에 대한 이러한 그의 이해의 태도는 쌀알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최근 회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동양인의 주식인 쌀을 통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 뜻의 ‘식구’(食口) 본연의 의미를 확인한다. 동시에 소복하게 담긴 밥 같기도 하고, 둥글게 쌓아 올린 봉분 같기도 한 쌀더미에서 안온한 과거를 건조한 현재로 호출해 낸다. 마치 소중한 생명을 축복하기 위해 차려진 첫 생일상의 흰 쌀밥이 고인을 기리는 제사상에도 오르듯이 그의 근작들에서 과거와 현재, 생성과 소멸, 상실과 축적(蓄積)은 동일한 궤도에서 순환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 개체에서 인간관계를 경유해 다시 관계의 구조로 예술적 탐문의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는 최혜인의《소행성》은 존재론적 모험이다. 관계의 성립과 순환의 사유를 통해 그가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은 확고한 자아와 이를 토대로 심화되고 있는 예술 세계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형식과 동일한 모티브로 현란하지 않는 변화를 성실히 모색해 나가고 있는 그의 존재론적 모험에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적당한 거리와 일정한 관심으로 꾸준히 깊어 가는 미더운 관계를 떠올린다.
공주형 (미술평론가)
Hyein Choi's "Asteroids," an existential adventure
Hye n Choi has long focused her artistic attention on plants. The vegetables and grains she encountered at the table and in the kitchen were familiar to her in the real world, but her paintings have focused on the heterogeneity she witnessed in intimate relationships, such as different colors and shapes within a single group or different qualities and states within the same category. In her paintings, plants are always in physical proximity, yet they constantly evoke a sense of psychological distance, recalling the primordial inadequacy of closeness that E. Levinas discusses in Being and Otherness.
In her recent works, she continues his organic thinking about human individuals and their relationships through the medium of plants. Still, she finds individualized human beings in the differences and disparities between beings of insufficient closeness, and the complexity of human relationships in the tangle of roots and clusters of sprouts. What is also noteworthy about these recent works is not only the richness of color and texture, which is enhanced by the use of gouache, acrylic, pigment, and white clay on canvas and paper. In her latest works, she presents a perspective of relationships and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world.
In her previous paintings, such as Family, Adolescence, and Lettuce Flower, she has depicted relationships and the specific situations that arise from them. In contrast, her artistic interest has shifted to the creation and continuation of relationships, their processes and structures, as seen in her recent works such as Uptake, Reproduce, Settle, and Circle. Through the germinating, fruiting potatoes and beans, she reflects on human relationships as they are created, grow, and expand in a cycle of collision, conflict, reconciliation, and understanding. Just as the moon waxes and wanes, days lengthen and shorten, and mothers conceive and give birth to life, the relationships and situations visualized in her recent works are variable and fluid.
Shifting the center of artistic inquiry from the human individual to the structure of relationships and back again, Choi's Asteroid is an ontological adventure.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relationships and circular thinking, what she is securing is a solid self and a deepening art world. Her ontological adventure, in which she sincerely seeks unobtrusive changes in the same form and the same motifs, reminds me of a muddled relationship that steadily deepens over the years with moderate distance and constant attention.
Shifting the center of artistic inquiry from the human individual to the structure of relationships and back again, Choi's Asteroid is an ontological adventure.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relationships and circular thinking, what she is securing is a solid self and a deepening art world. Her ontological adventure, in which she sincerely seeks unobtrusive changes in the same form and the same motifs, reminds me of a muddled relationship that steadily deepens over the years with moderate distance and constant attention.
Gong, Joo hyung (Art Critic)
소행성 (小行星)
“매일 접하는 곡식과 야채. 가녀리지만 동시에 강인함. 채식주의자 같은 담백함.
군(群). cluster. 인간관계. 사람살이. 살리다. 살림. 달. 모성. 번식. 흡수. 순환”
누군가의 말처럼 ‘살림’의 어원이 부엌데기 엄마들의 궂은 일이 아니고 인간이면 누구나 동참해야 할 숭고한 노동,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본다면, 나는 우리의 주식인 곡물에서 진정한 ‘살림’을 만나고 ‘식구(食口)’의 원초적 의미에 관해 생각해본다. 같은 콩에서 발아 시점이 모두 다른 싹들, 이들이 공생하고 기생하며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떠도는 별처럼 계속 움직이며 어디론가 흘러간다. 형태가 조금씩 변하는 밤하늘 달의 모습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곡물의 발아하고 번식하는 과정은 하늘의 달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늘 일정한 형태의 태양과 달리 만물을 생성시키고 스스로 변화하는 달의 속성이 임신, 출산 등 여성의 가변적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가진 중요한 기능을 번식력이라고 볼 때 원시 신화 속에서 달은 생식 능력을 지니는 대지 모신(母神)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달의 주기에 맞게 농사지어 수확하는 절기에 관해 표현해 보았다.
쏟아지는 듯한 쌀알과 콩들은 소복하게 담겨진 밥 한 공기의 형태로 엄마의 가슴 같기도 하고 무덤 같기도 하다. 한편 첫 생일상의 밥이 되기도 하고 제사상의 밥 한 공기도 되는 것처럼 탄생과 죽음은 늘 맞물려 돌고 돈다.
한 톨의 쌀알에서도 우주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땅에서 수확된 생명의 먹거리에서 행성처럼 움직이고 순환하는 우리 일상의 삶을 펼쳐 보려하였다.
2014. 최 혜 인
2014. 6월호. 월간미술, 서울아트가이드 전시 리뷰 요약
최혜인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채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는 곡식과 채소 등의 식물에서 소우주를 발견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잡식성 동물인 인간의 식사 재료가 되는 곡물과 채소는 발아와 성장을 거쳐 수확됨으로써 인간의 생명 공급원으로 제공된다. 작가는 이러한 식물 성장의 순환 과정에서 변화하는 미세한 모습을 포착하여 그것을 우리 삶의 여러 모습과 생명의 순환 과정을 표현하는 시각적 이미지로 응용하고 있다.
씨앗과 낱알에서 싹이 돋고 자라나서 개화와 결실로 이어지는 식물의 순환과정은 태아에서 발달하여 탄생과 성장으로 진화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화나 인물화에서 무심히 다루어진 주변적 소재로서의 식물들이 화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것으로부터 거대한 인간의 서사나 우주의 축소판 같은 내러티브가 도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최혜인의 작품은 이런 면에서 신선하다.
여성 작가로서 모성과 생명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을 우주의 유동적인 변화와 달의 움직임 등의 천체 물리학적 원리로 투사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최혜인의 작품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주제 선택만큼이나 작가적인 조형 탐구의 진지함과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생명 현상에 대한 과장 없는 논리, 작가로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여 시각적으로 언어화해서 관람객과 소통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최혜인의 모티프에 대한 해석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계훈 (미술평론가)
Small Asteroid
“Everyday we deal with grains and vegetables. Fragile but strong. Vegetarianism like simplicity. Cluster. Human relationship. Person's life. Save. Housework. Moon. Maternity. Breeding. Absorption. Circulation.”
Someone said that the origin of the word "sallim(Living)" is not the hard work of mothers locked in the kitchen, but the noble labor of saving lives that everyone must participate in, and I met the true "sallim" in the grains that are our staple food and thought about the original meaning of "family". When I saw the sprouts that sprouted at different times from the same bean, and the way they coexist and parasitize, I thought they were similar to human life.
Our lives are not static, but continue to move like wandering stars and flow somewhere. I have the habit of looking at the shape of the moon in the night sky that changes slightly. The process of germination and reproduction of grains i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moon in the sky. Unlike the sun, which always has a fixed shape, the moon's property of creating all things and changing itself is similar to the variable life of women, such as pregnancy and childbirth. When we think of the important function of women as fertility, in primitive mythology, the moon was also considered to be a mother goddess with fertility. I tried to express the season of farming and harvesting according to this lunar cycle.
The rice grains and beans that seem to be pouring out are like a mother's breast or a tomb in the form of a bowl of rice with a delicate taste. On the one hand, it is a bowl of rice that becomes the first birthday table or the ancestral table. Birth and death are always intertwined.
Just as you can meet the universe in a single grain of rice, I tried to unfold our daily lives that move and circulate like planets in the food of life harvested from the earth.
2014.4. HYEIN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