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Small planets 2014

최혜인의 《소행성》, 존재론적 모험

 

최혜인은 오랫동안 식물에 예술적 관심을 집중해 왔다. 식탁과 주방에서 흔하게 마주쳤던 야채와 곡물은 현실 세계에서 그와 친숙한 관계를 맺어온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회화는 단일한 군집 내의 이질적 색깔과 모양 혹은 동일한 범주 안의 상이한 성질과 상태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목도한 이질감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해 왔다. 그의 회화에서 식물들은 언제나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서 끊임없이 심리적 거리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존재와 다르게』에서 레비나스(E. Levinas)가 언급한 가까움의 원초적 불충분함을 떠올리게 한다.

 

근작들에서 그는 식물을 매개로 인간 개체와 그 관계에 대한 유기적 사유를 지속한다. 여전히 그는 불충분한 가까움의 존재들의 다름과 차이에서 개성이 제각각인 인간 개체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 뿌리가 뒤엉킨 채 무리를 이루고 있는 콩나물에서 복잡다단한 이해들로 얽힌 인간관계를 떠올린다. 여기에 덧붙여 근작들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캔버스와 종이에 과슈와 아크릴, 안료와 백토를 사용해 한층 풍부해진 색감과 질감만이 아니다. 근작들에서 그는 관계와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족〉,〈사춘기〉,〈상추꽃〉등 기존 회화에서 그는 관계의 확정과 그것에서 비롯된 구체적 상황을 형상화해 왔다. 이에 비해 〈움트다〉,〈번식하다〉,〈정착하다〉,〈순환하다〉와 같은 근작들에서 보듯 그의 예술적 관심은 관계의 생성과 지속, 과정과 구조로 이행 중이다. 그는 발아하고, 열매 맺는 감자와 콩을 통해 충돌과 갈등, 화해와 이해의 반복 속에서 생성되고, 성장하고, 확장되는 인간관계를 본격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달이 차고 기울듯이, 낮이 길었다가 짧아지듯이, 산모가 생명을 잉태했다가 출산을 하듯이 그의 근작들에서 가시화되는 관계와 상황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관계에 대한 이러한 그의 이해의 태도는 쌀알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최근 회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동양인의 주식인 쌀을 통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 뜻의 ‘식구’(食口) 본연의 의미를 확인한다. 동시에 소복하게 담긴 밥 같기도 하고, 둥글게 쌓아 올린 봉분 같기도 한 쌀더미에서 안온한 과거를 건조한 현재로 호출해 낸다. 마치 소중한 생명을 축복하기 위해 차려진 첫 생일상의 흰 쌀밥이 고인을 기리는 제사상에도 오르듯이 그의 근작들에서 과거와 현재, 생성과 소멸, 상실과 축적(蓄積)은 동일한 궤도에서 순환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 개체에서 인간관계를 경유해 다시 관계의 구조로 예술적 탐문의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는 최혜인의《소행성》은 존재론적 모험이다. 관계의 성립과 순환의 사유를 통해 그가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은 확고한 자아와 이를 토대로 심화되고 있는 예술 세계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형식과 동일한 모티브로 현란하지 않는 변화를 성실히 모색해 나가고 있는 그의 존재론적 모험에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적당한 거리와 일정한 관심으로 꾸준히 깊어 가는 미더운 관계를 떠올린다.

 

공주형 (미술평론가)

소행성 (小行星)

 

“매일 접하는 곡식과 야채. 가녀리지만 동시에 강인함. 채식주의자 같은 담백함.

군(群). cluster. 인간관계. 사람살이. 살리다. 살림. 달. 모성. 번식. 흡수. 순환”

 

 

누군가의 말처럼 ‘살림’의 어원이 부엌데기 엄마들의 궂은 일이 아니고 인간이면 누구나 동참해야 할 숭고한 노동,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본다면, 나는 우리의 주식인 곡물에서 진정한 ‘살림’을 만나고 ‘식구(食口)’의 원초적 의미에 관해 생각해본다. 같은 콩에서 발아 시점이 모두 다른 싹들, 이들이 공생하고 기생하며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떠도는 별처럼 계속 움직이며 어디론가 흘러간다. 형태가 조금씩 변하는 밤하늘 달의 모습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곡물의 발아하고 번식하는 과정은 하늘의 달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늘 일정한 형태의 태양과 달리 만물을 생성시키고 스스로 변화하는 달의 속성이 임신, 출산 등 여성의 가변적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가진 중요한 기능을 번식력이라고 볼 때 원시 신화 속에서 달은 생식 능력을 지니는 대지 모신(母神)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달의 주기에 맞게 농사지어 수확하는 절기에 관해 표현해 보았다.

 

쏟아지는 듯한 쌀알과 콩들은 소복하게 담겨진 밥 한 공기의 형태로 엄마의 가슴 같기도 하고 무덤 같기도 하다. 한편 첫 생일상의 밥이 되기도 하고 제사상의 밥 한 공기도 되는 것처럼 탄생과 죽음은 늘 맞물려 돌고 돈다.

 

 

한 톨의 쌀알에서도 우주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땅에서 수확된 생명의 먹거리에서 행성처럼 움직이고 순환하는 우리 일상의 삶을 펼쳐 보려하였다.

 

2014  최 혜 인

This site was designed with the
.com
website builder. Create your website today.
Star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