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된 덩어리 Latent Mass 2019

2019.9.4 (수) - 17(화)    

Gallery DOS 신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7길 28)

씨앗을 통한 순환적 사유

 

자연의 유기체는 각자 고유한 형태와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에 따라 예술가에게 무한한 영감을 가져다준다. 하나의 상태로 고정된다는 것은 그 존재와 의미가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하지만 이에 반해 자연은 끝없이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기에 그만큼의 다양성을 내포한다. 최혜인의 작품에서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열매와 씨앗은 자연의 본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마주친 부정할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이다. 작가는 만물의 원형이 함축된 단단한 표피로 쌓인 씨앗이 발아하고 결국 시들어 다시 씨앗을 생성하는 삶과 죽음의 순환 과정을 숙고하고 여기에 인간사를 투영한다. 화면 위에 형상화된 원초적인 생명력은 만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대변해준다.

 

씨앗은 생명이자 무한한 가능성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새로운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소멸 후 다시 씨앗을 남기는 순환 과정은 대자연의 섭리이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삶도 그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역동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으며 이처럼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초월적 인식들로 인해 작가는 작은 생명이 가진 근원적 힘에 더욱 주목한다. 작품에 표현된 씨앗이나 열매를 표현한 형상은 마치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증식하는 원시적인 생명체같이 보인다. 여기에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미시의 세계를 확대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차원의 세계를 그린 것 같기도 한 신비로운 모습으로 보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다.

 

최혜인은 씨앗을 통해 자연이 스스로 변화하며 그려내는 다채로운 모습에 집중한다. 자연 스스로 생성하는 원리가 자연의 유기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이 유기적 구조는 앞으로 변화해 갈 성장에 대한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상을 자극한다. 이는 작은 씨앗 안에 앞으로 생성될 모든 가능성이 내재해 있는 것처럼 작품이 여러 가지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방성을 전제로 한다. 화면 안에서 열매와 씨앗의 형상들은 한 쌍의 짝을 이루거나 여럿이 무리 지어 모여 있는데 이는 인간이 비록 고유한 독립된 개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가 삶의 기저에 깔려있음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화면에 고유한 식물의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그 안에 삶의 의미를 담아내어 파생될 수 있는 무수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서로 영향을 미쳐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얽힌 관계들로 인해 씨앗이 발아되기 전까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함축된다. 회면은 원초적인 색감과 형태들로 인해 발아하는 생명력만큼이나 동적인 에너지를 가득 머금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생성과 소멸 그리고 다시 생성되는 순환의 고리 안에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매번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최혜인의 작품에는 식물을 암시하기는 하나 확실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을 작가는 ‘잠재적 덩어리’라고 칭한다. 인간의 삶과 의식 구조는 어쩌면 논리보다는 근원적 생명의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에 기반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 안에 응집된 아름다움과 무한한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 안에서 식물의 유기적 이미지를 좀 더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업은 작가에게 있어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에 관한 탐구이자 동시에 그 관계성에서 발생하는 의문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김선재 (갤러리 도스 관장)

 

잠재된 윤회의 생명력

 

무성한 나무도 시작은 작은 씨앗이었다. 나에게 씨앗은 이것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물을 주고 키워가며 알아내야 하는,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듯이 시간이 필요한, 잠재된 생명 덩어리다. 그래서일까? 땅 밑의 씨앗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씨앗은 수많은 시간과 기억의 층을 지닌다. 한 나무의 삶과 죽음, 자연과의 상생이 이 한 톨에 다 담겨 있다.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그리고 때가 되면 꽃잎을 떨군다. 아름다운 꽃이 지는 것은 애달프지만 꽃이 져야 비로소 열매와 씨앗이 맺어진다. 역설적이지만 꽃의 죽음은 생을 이어가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이자 축복이 된다.

 

겨울은 씨앗이 지니는 또 하나의 시간이자 기억이다. 씨앗에게는 혹독하지만 더욱 단단하게 여무는 단련의 시간이고, 안식의 시간이 된다. 겨울을 지내야만 비로소 봄과 여름을 맞이하고 결실의 가을을 누릴 수 있다. 차곡차곡 계절을 쌓은 씨앗은 다시 혹독한 겨울을 조우하며 다음 봄을 꿈꾼다. 강낭콩 씨를 수확할 때는 씨가 생명의 끝이었는데 심을 때가 되니 그 끝이 다시 시작이 되었다. 작고 가벼운 씨앗 속에 시작과 끝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항상 경이롭다.

 

씨앗은 동적인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관능적인 생명 덩어리다. 발도 없고 날개도 없는데 바람에 따라, 곤충에 의해, 새의 도움으로 사방팔방을 돌아다닌다. 이윽고 어느 한 곳에 살포시 정착해 뿌리를 내리며 주변과 상생의 관계를 맺는다. 생명체는 다르면 다를수록 적응력이 강해지고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며 이러한 다름이 서로의 공존을 허용한다. 동물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동한다. 하지만 식물은 그 자리에 남아 적응하는 방법을 택한다. 형태를 바꾸거나 외부의 도움을 빌거나 내부에 생화학적 요소를 만드는 방법으로 생존을 위해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씨앗을 통해 자연의 뿌리를 상상한다. 인간의 몸을 흙과 동일한 바탕, 마음을 유동적인 물이라고 생각해 본다. 흙은 생명을 품고 물은 이를 순환시키며 각각의 씨앗을 양생(養生)한다. 싹을 틔우며 생명의 여정을 시작하는 씨앗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잠재된 생명력으로서의 환상을 나에게 선사한다.

 

2019  최 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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